CRITICS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1988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에 부쳐

2017-01-16

내가 화가 이성자를 서울에서 처음 만나 그의 작품을 직접 대하게 된 것은 1965년 9월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개최한 이성자 전람회 때였다. 물론 인간 이성자는 인천에 살 때부터 면식이 있었지만 그가 파리로 가서 화가로 전신한 후로는 처음이었다. 이 전시회는 말로만 듣던 화가 이성자의 작품세계를 직접 보고 또 훌륭한 작품을 접하게 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쪽이냐 하면 세련되고 여성적인 섬세가 화면전체에 깔려있는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테마가 된 것은 주로 한국의 민예품을 양식화한 것으로써 그만큼 보는 이에게 한국이라는 국적을 심어주었다. 파리의 하늘 밑에서 멀리 조국을 바다라 보면서 제작한 그녀의 작품이 그러한 한국적인 향취와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는 유화가 대부분이었으나 그에 버금가는 판화도 아울러 취급하였다. 작품구상 수법은 중년에 예술가가 된 사람답게 되풀이 되는 기술보다는 고존한 아마츄어적인 솜씨가 돋보여서 형식의 아름다움보다도 정신의 풍부함에 감탄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화가 이성자는 1951년에 도불하여 65년에 개인전까지 15년간 파리에서 제작생활을 했기 때문에 65년에는 이미 어느정도 예술적인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듣는 바에 의하면 화가 이성자는 51년 도불하여 디자이너가 되려고 연구소에서 뎃상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미 중년을 지나 처음으로 시작한 그림이지만 원래 소질이 있어서 그와 같은 시간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의미에서 인생을 바라다보는 눈이나 예술을 해석하는 머리가 생기고 나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오히려 철 모를 때 시작한 화가의 그림보다는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한 이성자는 1958년에 이미 Galerrue Lara Vincy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때 그림은 감미로운 서정성을 담고 있는 비구상계열의 작품이다. 여기서 비구상이란 어휘를 강조한 것을 화가 이성자가 단 한번도 그의 제작에 있어서 자연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이야말로 그에게 예술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물체가 가지는 미적 현상을 아름다운 색감과 세련된 솜씨로 얼마든지 그려냈다. 이러한 제작이 6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작품은 점과 선으로 이룩된 동양적인 조형공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1978년 경복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이때는 곡선과 곡면이 난무하는 독특한 운동공간으로 화면을 채웠다. 말하자면 중복된 공간 속에서 색의 질량으로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1970년을 고비로 해서 그의 화면은 확대되고 이른 바 추상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화면 가득히 펼쳐진 원과 반원, 그리고 선과 면으로써 독특한 미의 세계를 실현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상적인 작업 속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이미지와 형식을 도입했던 것이다.
1977년을 전후해서 화가 이성자는 나무를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것은 목제가 가지는 연륜과 독특한 질감을 화면에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1977년부터 그의 작품의 스케일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중첩된 산과 전개되는 공간 속에 한국의 색동과 같은 민속적인 모양을 양식화하는 그림으로 전환되었다. 이와 같은 웅대한 자연과 산천이 어떻게 해서 그의 작품에 도입되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화가 이성자의 자연에 대한 애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산의 능선이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그 윗쪽에는 빛나는 무수한 별과 같은 색점, 그리고 달 대신 색동을 이용한 원형이 하늘에 떠 있다. 이와 같이 인위적인 조형형태와 바라다 본 자연이 하나가 되어서 환상적이고 꿈과 같은 조형세계를 실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화가 이성자는 자연에 의탁한 자기의 심성을 색과 형태의 아름다움 속에 의존하여 영원화 시킨 것이다.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